기록/도서

진짜 하나님은 누구인가? 알라인가? 예수인가? 새물결플러스 나빌 쿠레쉬, 박명준 옮김

pīla mens "필라멘스" 2019. 5. 6. 20:26

  전세계적으로 이슬람에게 주목을 끄는 사건이 있었다. IS의 등장이다. 이 단체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관심받기에는 충분했다. 여러 지역에서 테러를 일으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주목받으면서 나타난 문제는 이슬람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는 것이다. 누구는 IS가 극단적인 단체다. 또 다른 누군가는 IS는 무슬림이 아니고 이슬람을 오해한 것이다. 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 누군가가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에 의아했지만 이는 곧 기독교에 여러 종파가 있듯이 종파의 차이로 인해 그럴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슬람 내에서 대립구조가 존재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가 말하기를 ‘이슬람이 칼의 힘으로 전파되었다는 개념에 많은 이들이 이의를 제기하지만, 이슬람의 초기 역사에서 칼이 현저한 특징이었음은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 무함마드 후계자인 칼리프들은 이내 명백한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2대 칼리프이 우마르는 페르시아인 복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3대 칼리프인 우스만은 무슬림 반역자들에 포위되었다가 처참히 살해되었다. 무함마드 조카이자 4대 칼리프인 알리도 반대파에 의해 암살되었다. 암살되기 전에 그는 무함마드의 젊은 아내인 아이샤의 군대와 전쟁을 벌였는데, 이슬람 최초의 내전 곧 ’제 1차피트나‘가 벌어진 그날에 만여 명의 무슬림들이 전쟁터에서 서로를 죽였다. ... 무함마드의 동반자들이 다스리는 시대(정통 칼리프 시대)가 지나고, 우마야드 칼리프(5대)가 9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다스렸으며, 이후 정변과 전쟁이 발발하여 압바시드 무슬림들이 정건을 잡고 왕조를 세워 750년간 다스렸다. 압바시드 왕조 7대 칼리프의 통치가 전성기였는데 이 때 ‘미흐나’ 곧 이슬람 종교재판소를 도입했다.’ p69-70
  종교재판소가 등장하고 ‘타우히드’의 논쟁으로 연결되는데 ‘타우히드’는 알라의 완벽한 유일성을 가르치는 교리다. 알라가 완벽한 유일성이라면 무함마드를 통해 전달한 코란도 영원해야 한다. 그러나 코란의 영원성은 ‘타우히드’와 모순이 된다. 즉, 코란의 영원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 종교재판소에서 참수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p71 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선조들의 눈으로 볼 때는 코란이 영원하다고 해도 ‘타우히드’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논점대로라면 이슬람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이슬람을 연구한 사람들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도 친구 데이비드 덕분에 연구하면서 알게된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이슬람을 연구한 저자가 알라가 하나님인지 예수가 하나님인지 책을 쓰기에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가 이 주제를 다루기에 충분한 이유는 나빌 쿠레쉬는 태어날 때 부터 이슬람이었으며 후에 데이비드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신실한 무슬림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가 개종하게 된 계기는 기독교인 친구 데이비드에게 기독교가 잘못됐고 이슬람이 신의계시를 받은 종교라고 전하는 도중에 이슬람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그가 개종하게 되었다. 쿠레쉬처럼 태어날 때 부터 가지고 있던 종교를 버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신념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의 쿠레쉬라면 더 그럴 것이다. 가족일지라도 배교하게 되면 죽여야한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기에 버림받는 두려움을 넘어 개종한다는 것은 쿠레쉬에게 어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당시 데이비드와 함께 한 논쟁을 토대로 펼쳐지는 내용들이다. 기독교에서 중요시하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성경, 삼위일체 등 교리를 무너트리면 기독교는 옳지 않은 종교가 되는 거기에 이 주제를 중심으로 다뤄진다. 동시에 무함마드, 코란, 알라의 일위일체를 중심으로 토론한 내용을 기록해놓았다.

  몇가지 내용을 다루면서 어떻게 진행해 나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번째로 ‘샤리아’와 ‘복음’에 대해 다룬 첫번재 챕터이다. 샤리아는 ‘생명으로 가는 길’을 뜻한다. 샤리아는 생명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함마드를 통해 계시된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한다. 율법을 따르라는 가르침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명백한 차이점이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샤리아는 주신 말씀을 일점일획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반대로,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완성인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면 된다. 죄악된 우리여서 온전하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사랑을 완성해 나갈 수 있음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 주제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누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어떤 종교가 더 매력적인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예수에 대한 견해 차이이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서 기독교와 이슬람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예수는 기독교에서 메시아인 반면, 이슬람에서는 예언자일뿐인데, 제자들이 메시아로 추앙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지도 않은 사람을 부활했다고 하면서 잘못된 길로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그 앞잡이가 되어서 더더욱 잘못된 길로 가는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더 나쁜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역사는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잘못된 길로 데리고 가는거라면 입을 맞춰야 했기에 오랜 시간 후에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활 전파는 30년안에 기록되었고, 여러사람이 거짓된 의견을 통일시키기에는 너무 완벽한 통일성을 갖춘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함마드의 이야기가 몇백년이 지난 이후 쓰여졌다고 말한다.

세번째로는 무함마드가 진짜 예언자인가 하는 것이다. 이슬람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은 믿는다. 구악에 나타나는 예언자들의 공통된 성격을 살펴본다면 무함마드는 예언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예언자들은 평화를 선포했다면 반대로 무함마드는 전쟁광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쟁에서 죽는 것은 위대한 일이며 그것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천국에 가고 싶게 만든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IS는 진리라고 하는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이슬람이 그래도 존중받을 만한 종교라고 생각을 했었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는 종교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듯이 이슬람도 하나의 도덕적 가치관이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도덕적 가치관은 존재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슬람에 대해 실망만 남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 이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슬림인들끼리도 상반되는 주장을 하며 무엇이 옳은지 모르는 가운데 기초를 세우는 책으로 알맞다고 본다.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의 주장이라면 말이다. 그리하여 쿠레쉬에 이 책을 펼쳐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